[산타 마르타의 집 아침미사] 성령은 타협이나 완고함이 아니라, 자유를 주신다


“우리의 신앙은 매우 구체적이고, 타협과 관념화를 배격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봉헌한 아침미사에서 이 같이 말했다.  이 미사에는 오늘 4월 24일부터 4월 26일까지 교황과 함께 만남을 갖는 교황 자문기구인 9인 추기경 평의회(C9)도 함께 했다. 교황은 복음선포가 타협이나 완고함 없이도 성령께서 이뤄지게 하신다며, 성령께서 우리에게 선사하시는 자유를 강조했다.

교황이 산타 마르타의 집에서 봉헌한 미사강론의 중심내용은 니코데모와 예수님의 만남, 그리고 불구자였던 사람을 치유한 다음 최고의회에서 했던 베드로와 요한의 증언이었다. 이 미사는 부활 축제 동안 잠시 멈췄다가 다시 봉헌된 첫 아침미사였다. 교황은 예수님께서 애정과 인내심을 가지고 니코데모에게 “위로부터 태어날”필요와 “성령으로부터 태어날” 필요가 있다며, “하나의 사고방식에서 다른 사고방식으로” 넘어가야 한다고 설명하시는 것에 주목했다. 교황은 이를 잘 이해하기 위해서 사도행전에서 발췌한 제1독서를 잠시 음미하자고 말했다. 베드로와 요한은 불구자였던 사람을 낫게 해주었고 “그 일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율법학자들은 어찌해야 할지, 이 일을 어떻게 “감추어야” 할지 몰라 당황한다. 그리고 최고의회에서 신문을 받았을 때, “그들은 담대하게 대답했고”, 더 이상 말하지 말라고 엄명을 내렸을 때 베드로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 우리는 계속 그렇게 할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셨고, 우리의 신앙은 구체적인 신앙이다

그러므로 교황은 “타협에 이르기 위해 협상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율법학자들에 비해서 사도들은 “사건의 구체성”, “신앙의 구체성”을 강조했다고 말했다. 곧 베드로와 요한은 “용기, 솔직함, 성령의 솔직함을 가졌고”, 그것은 “타협 없이, 용기를 가지고 진리를 공개적으로 말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바로 “핵심이요” “신앙의 구체성”이다.

“때때로 우리의 신앙이 구체적이라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말씀은 이념이 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이 되셨습니다. 사도신경을 바칠 때, 모두 구체적인 일들을 고백합니다. ‘전능하신 천주 성부, 천지의 창조주를 저는 믿나이다. (…) 잉태되어 나시고, 돌아가신 (…)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나이다 (…)’ 우리의 신경은 다음과 같이 말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것을 해야 하고, 이 일을 해야 하며, 이런 일을 해야 한다거나 또는 이 일들은 이런 것을 위한 것이라고 믿습니다. (…)’ 아닙니다!  아주 구체적인 일들입니다. 신앙의 구체성이 솔직함에 이르게 하고, 타협이나 신앙의 이념화에 반대되는, 순교에 이르기까지 증언하게 만듭니다.”

때때로 교회조차 “(무엇을) 할 수 있고, 할 수 없다는 식의 신학”에 빠진다

이 율법학자들에게, 말씀은 “인간이 되신 것이 아니라, 율법이 되었다. 그 이상도 아니고, 거기까지만 해야 했고”, “그것만 행해야 했고”, 그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이었다고, 교황은 계속 말을 이어 나갔다.

“이와 같이 그들은 이러한 이성주의적인 사고방식 안에 갇혀있었고, 그들만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아닙니까? 교회 스스로 이성주의, 계몽주의를 단죄했음에도 불구하고, 교회의 역사 안에 수차례 반복됐던 것처럼, 수없이 ‘할 수 있고, 그리고 할 수 없다’, ‘여기까지, 저기까지’ 식의 신학에 빠졌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힘과 성령의 자유를 망각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는 선포와 설교의 솔직함 그리고 자유를 주시는 성령으로부터 다시 태어남을 망각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완고함 없이 복음을 선포하기 위한 성령을 선사하신다

교황의 기도는 이러했다. “바람 부는 대로 가시고 오시며 저희를 앞으로 이끌어주시는 성령에 대한 체험을 주님께 청합니다. 저희에게 신앙의 도유를 베푸시고, 신앙의 구체성을 도유해주시는 성령 체험을 주님께 청합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데로 분다. 너는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에서 와 어디로 가는지 모른다. 영에서 태어난 이도 다 이와 같다.’ 목소리를 듣고, 바람을 따르고, 어디서 끝날지 알지 못하는 성령의 목소리를 따릅니다. 왜냐하면 신앙의 구체성과 성령 안에서 다시 태어남을 위한 선택을 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살을 취하시어 이 세상에 오신 그분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선포할 자유를 가지고, 타협 없이, 완고함 없이, 성령의 길을 가도록, 주님께서 저희 모두에게 이 부활의 성령을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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